오늘, 7월 19일은 기독교 역사에서 어두운 날이다. 서기 64년 이 날, 로마의 대화재는 그 영원한 도시의 삼분의 이를 잿더미로 만들었다. 로마의 역사가 타키투스(https://www.bartleby.com/library/prose/5104.html)에 따르면, 불은 가연성 소재가 밀집된 일부 지역에서 점화되어 강풍에 급속도로 번진 뒤 일주일 반 동안 계속되었다. 그것은 악몽 같은 것이었다.
타키투스는 다음과 같이 기록했다.
"그 분노의 불길은 도시의 평지를 먼저 지나간 다음 언덕을 향해 치솟았다. 그러나 다시 그 아래의 모든 곳을 황폐화시켰다. 어떤 방법으로도 불길을 막을 수 없었고, 옛 로마의 특징인 좁고 구불구불한 통로와 불규칙한 도로를 너무나 빠르게 초토화시켰다.“
그는 계속해서 비명을 지르는 여자들, 무력한 아이들, 그리고 그들 앞에서 모든 것을 짓밟는 패닉 상태의 군중들을 묘사했다.
화재가 끝났다고 두려움이 끝나지 않았다. 당시 왕좌에는 부도덕하고 기독교인에 대한 증오심으로 악명이 높은 네로 황제가 있었다. 네로가 그 검게 그을린 도시를 자신의 이미지로 재건하는 방식뿐만 아니라 "그가 로마가 불타는 동안 빈둥거렸다"는 소문에 의심을 품은 많은 로마인들은 그가 직접 불을 지른 것이 아닌지 의심하기 시작했다.
그 소문을 미연에 방지하기 위해 네로는 기독교인들에게 비난을 돌렸다. 왜 안 그랬겠는가? 기독교인들은 이상했다. 그들은 피와 살을 먹고 마시는 것에 대해 이야기했다. 그들은 남편을 "형제"라, 아내를 "자매"라 불렀다. 그들은 무신론자들처럼 신들을 부정했다. 그들은 죽은 사람이 다시 살아나서 영광 가운데, 가장 적절하게는 응징하기 위해 언젠가 돌아올 것이라 생각했다.
이때까지만 해도 대부분의 신자들을 로마 당국이 내버려뒀지만, 네로는 그들이 괴롭히기 쉽다는 것을 알았다. 그 후 베드로와 바울은 무명의 많은 다른 기독교인들과 함께 운명을 달리했다.
만약 이것이 기독교인들이 공공의 재난에 대한 비난을 받은 첫 번째 사건이었다면, 마지막 사건은 확실히 아니었다. 기독교인들은 많은 문화적 환경에서 자신들이 인기 없는 소수 민족임을 알게 되었고, 다양한 사회에서 다양한 재난의 원인으로 지속적으로 비난을 받아왔다. 네로의 공격을 받은 지 1세기 반이 지난 후, 북아프리카의 기독교 작가인 테르툴리아누스는 "티베르 강의 수위가 너무 높아지거나 나일강의 수위가 너무 낮아지면, 그 해결책으로 항상 기독교인들을 사자밥으로 먹였다."라고 소름끼치게 적었다. 410년, 이교도 작가들은 로마가 부도덕한 기독교를 위해 자신의 신들을 버리지 않았다면 독일 부족들에 의한 로마 약탈은 일어나지 않았을 것(https://education.nationalgeographic.org/resource/sack-rome)이라고 주장했다. 그러한 비난에 히포의 아우구스티누스는 그의 역작인 "하나님의 도성"으로 대응했다.
서양 문명의 역사에서 가장 중요한 작품 중 하나인 '하나님의 도성'은 수세기가 지난 지금도 목사, 철학자, 역사가들이 읽고 있다. 이 책에서 아우구스티누스는 기독교인들을 상대로 한 얄팍한 비난을 철저히 방어했다. 그는 로마의 더 순수하고 이교도적인 과거로부터 자연적, 군사적 재난과 심각한 도덕적 결함에 대해 여러 차례 언급했다. 이러한 사례들을 가지고, 그는 기독교인들이 어떻게든 삶을 더 나쁘게 만들었다는 비판을 철회시켰다. 사실 성경의 이상들은 항상 상황을 더 좋게 만들었다.
오늘날 기독교인들은 비슷한 비난에 직면해 있다. (적어도 서구에서는 어쨌든) 사자에게 던져지지는 않지만, 기독교인에 대한 적개심의 저류가 분명하고 점점 증가하고 있는데, 이것은 종종 고대 시대에 사용되었던 비난과 비슷하다. 기독교인들은 빈곤의 만연, 기후 변화로 인한 자연재해, 과학기술의 타락(https://samploon.com/christian-view-on-causes-and-effects-of-poverty/), 그리고 모든 종류의 사회, 정치적 탄압의 원인으로 비난을 받아왔다.
우리의 답변은 어거스틴의 답변과 거의 같을 수 있다. 억압, 빈곤, 군사적, 자연재해는 인류 공통의 운명이다. 이런 것들은 복음이 들어간 적이 없는 시대와 장소에서 흔하게 나타난다. 그러나 기독교가 들어간 곳에는 병원, 대학, 기술의 혁신, 자유가 생기고, 인간의 존엄성에 대해 특별하게 강조한다.
최근, 기독교가 세상에 가져온 선한 것들은 (아직은!) 비기독교도인 역사학자 톰 홀랜드의 저서 "도미니언"과 성공회교도인 복음주의자 글렌 스크리버의 신간 "우리가 숨쉬는 공기(The Air We Breath)"와 같은 책들에 묘사되었다. 이 작품들은 그리스도께서 오시기 전 세상이 얼마나 나빴는지, 기독교가 아니라 그리스도 때문에 우리가 선하고 가치 있다고 생각하는 것들이 얼마나 많이 세상에 들어왔는지를 일깨워준다. 오늘날 부당한 비난을 받는 기독교인이라면 누구나 이 책들을 읽고 용기를 얻어야 한다. 기독교는 그때나 오늘이나 진실하고 선하다.
(영문 스크립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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