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활절을 모독한 대통령 (존 스톤스트리트)
1. 영어 오디오 및 원문 스크립트
2. 한국어 오디오 및 번역 스크립트
(1) 한국어 오디오: https://youtu.be/fGiuMDaOuPc
(2) 국문 번역 스크립트
지난 성 금요일, 바이든 대통령은 부활절을 "트랜스젠더 가시화의 날"로 선포했다. 이 일이 분노를 일으키리란 사실을 분명히 알았을테지만 이를 옹호하는 이들은 3월 31일이 10년 넘게 그런 날로 인식되어 왔으며 올해는 그날이 부활절과 같은 날이었던 것뿐이라고 바로 지적했다. 따라서 기독교인들은 '독실한 가톨릭 신자'인 대통령이 2천 년 넘게 수백만 명이 신성하게 여겨온 이 날을 모독하는 것에 대해 불쾌하게 생각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했다. 성 정체성 목록을 인정하는 날이 점점 늘어나서 (세 달은 말할 것도 없고) 심지어 24개의 기념일이 달력에 이미 지정되어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렇다고 한다.
대통령의 행동은 지난 2월 뉴욕의 성 패트릭 대성당에서 벌어진 사건을 생각해 볼 때 가장 잘 이해할 수 있다. 에베소서 5장 11~13절에서 바울이 했던 경고에 따라 은밀히 행해진 일들에 관한 세부 사항은 언급하지 않겠지만, 칼 트루먼 교수는 <First Things>에 기고한 글에서 여성처럼 옷을 입고 종종 기괴하게 변태적이며 매춘을 행했던 전투적인 무신론자였던 한 남성의 장례식에 대해 묘사했다. 장례식에 참석한 이들은 충격과 불쾌감을 주는 연설을 하며 그 남성을 성인으로 추앙했다.
트루먼은 이 사건이 '탈주술화(disenchantment; 문화적 이성화와 종교의 가치상실)'에서 '신성 모독(desecration)'으로의 전환을 의미한다고 지적했다.
"한 문화의 중심을 차지하기 위한 투쟁은 항상 시간과 공간이라는 두 영역에서 일어난다. 로마 제국을 기독교가 변혁시켰던 역사가, 종교적 전례력이 등장하고 이교도 사원이 교회로 바뀐 사건으로 나타났던 것처럼, 한 문화가 이교화될 때에는 그 반대의 현상이 일어날 거라 예상할 수 있다. ... 우리 시대는 탈주술화가 아니라 신성 모독의 특징을 보인다. 문화를 이끌어 가는 계층은 이전 세대가 신성하게 여겼던 것을 단순히 소외시키는 일에만 전념하지 않는다. 그들은 이를 파괴하는 일에 헌신한다."
독일의 사회학자 막스 베버는 1918년 서구 세계가 신적이고 초월적인 것에 대한 믿음에서 물질주의적 과학주의로 전환하는 과정을 설명하기 위해 '탈주술화'라는 용어를 처음 사용했다. 사실 베버가 그 때 사용한 독일어 단어는 "마법의 주문을 깨다"라는 뜻에 더 가깝다. 최근에는 찰스 테일러가 그의 저서 <세속의 시대>에서 이 세속주의적 개념을 "탈주술화"라는 단어로 대중화시켰다.
그러나 프리드리히 니체가 "광인"의 비유에서 예측했듯이, 신적이고 초월적인 우주관은 많은 사람들이 예상했던 것보다 버리기가 더 어려웠다. 프랑스 혁명가들은 왕은 신성하게 임명되었다는 믿음은 기꺼이 버리면서도, 자유주의적인 자유와 같은 도덕적 절대성이나 어떤 사람은 다른 사람에 대해 권위를 행사할 권리가 있다는 등, 초월적 진리는 존재하는 것처럼 행동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니체의 '광인'은 결국 '신의 죽음'으로 인해 존엄성과 도덕성에 대한 당연한 믿음이 무너지고, 따라서 취약해질 것이라고 예측했다.
그의 말은 맞았다. 사실 서구의 '탈주술화'는 우리를 영지주의자로 만들었고, 물리적인 현실에 주어진 것조차도 의심하게 만들었다. 심지어 어떤 이들은 과학적 권위에 호소하면서 우리의 육체가 성별과 무관하다고 말하기도 한다.
영지주의라는 이단은 교회 역사를 통해 다양한 형태를 취해 왔지만, 항상 하나님과 그분의 세계에 대한 내면의 '영적' 지식을 그분이 세상에 대해 계시하신 다른 어떤 것보다 우선시했다. 영지주의는 모든 형태에서 "성스러운 것"과 "세속적인 것"인 것의 구분을 절대화하는 오류를 범한다. 이러한 구분은 하나님이 인간처럼 영적이고 물질적인 모든 것을 창조했다고 가르치는 성경의 관점과 상충된다.
성경은 또한 예수님이 창조 당시 임재하셨고 하늘과 땅의 주인이시며, 말세에 "모든 무릎을 예수의 이름에 꿇게 하시고 모든 입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주라" 시인할 것이라고 선포한다. 여기서 바울은 그리스도인들이 마음속으로 "나는 예수님이 주님이라고 생각한다"거나 "나는 예수님을 내 삶의 주님으로 삼았다"라고 개인적으로 말하는 물질적이지 않은 "내적" 경험을 묘사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그가 말하는 것은 기독교가 가르치는 것, 즉 예수 그리스도가 모든 시공간, 역사의 주인이라는 것이다.
예를 들어, 그리스도를 따르는 사람들은 그렇게 할 자유를 얻게 되마자, 시공간에 대한 그리스도의 권위를 선포하기 위해 시공간 속의 성스러운 공간인 웅장하고 아름다운 성당을 지었다. 이러한 공간은 어떤 의미에서 성육신의 물리적 표현, 즉 평범한 곳에 거하시는 신성함을 표현한 것이었다. 뉴욕의 성 패트릭 성당과 같은 장소는 아름답기도 하지만,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과 그 모든 것을 다스리시는 하나님의 권위에 대해 무언가를 말하는 것이기도 하다. 부활절은 단순히 가족과 재미있게 보내는 휴일이 아니라 인류 역사의 결정적인 순간으로, 시공간 속에서 그리스도가 보여준 순종과 승리를 기념하는 날이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권위에 도전하려는 사람들이 이를 되찾으려고 시도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트루먼 교수가 말한 '탈주술화'에서 '신성 모독'으로의 전환이, 바로 지금 우리가 겪고 있는 변화이다. '탈주술화'는 초월적인 현실로부터 문화적으로 분리되는 것을 의미한다. '신성 모독'은 여기에 필연적으로 뒤따르는 것, 즉 하나님의 권위를 찬탈하고 대신 다른 권위를 위해 시공간을 차지하려는 시도를 설명한다. 루이스 페리는 바이든 대통령이 부활절이 새로운 종교를 위한 날이라고 주장하려는 시도에 대한 반응으로 트위터에 "우리는 다시 이교도가 되어 가고 있다."라고 썼다.
동성애를 정상적인 것처럼 만들고 생물학적 성을 부정하는 등, 성 혁명의 사상은 창조에서 하나님께서 하신 일을 부정하는 것으로 시작하여 모든 생명에 대한 하나님의 권위를 거부하는 것으로 끝난다. 혁명가들에게는 다른 사람들이 자신들의 혁명을 단순히 '참아 주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모두가 그것에 '긍정하고 동의'해야만 한다.
우리가 이번 부활절에 목격한 사건과 같은 "신성 모독"이나 더 충격적인 사건이 계속 발생할 것은 거의 확실하다. 그러나 진리는 여전히 살아 있다. 그리스도는 창조주이시며 주님이시다. 모든 무릎이 꿇고 모든 입은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가 예수님께 있음을 고백할 것이다.
이 문화적 순간에 그리스도인답게 살기 위한 더 많은 자료를 보려면 breakpoint.org를 방문하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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