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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riter's pictureSang Lee

식인 풍습의 유행: 충격 요법과 몸의 가치

식인 풍습의 유행: 충격 요법과 몸의 가치

1. 영어 원문 오디오 및 스크립트 https://breakpoint.org/cannibalism-now-shock-value-and-the-value-of-bodies/


2. 한국어 음성 오디오 및 번역 스크립트

(1) 음성 오디오

https://youtu.be/sxyMbEz038Y

(2) 번역 스크립트 상업 영화의 철칙 중 하나는, 특히 누구나 탐내는 (한편으로는 이해하기 어려운) 한여름 블록버스터의 지위를 얻기 위해서는, 충분한 충격 요법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충격 요법의 철칙 중 하나는 항상 더 충격적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모든 새 영화는 지난 번 영화를 능가해야 한다. 쥬라기 공원 시리즈를 보자. 1993년에는 불과 다섯 명만이 공룡에게 잡아 먹혔는데, 그들은 모두 작은 섬에 갇혀 있었다. 원작만은 못했던 여러 속편들을 빨리 돌려 본다면 거대한 살인 메뚜기와 지구 전체를 배회하는 CGI로 처리된 돌연변이 공룡들이 수십 명이 넘는 사람들을 게걸스럽게 잡아먹는 장면을 볼 수 있다. 교훈은 분명하다. 관객들은 공룡이 다시 살아났다는 사실에 이미 충격을 받았고, 그들은 더 많은 것을 원한다. 과거에 흥분시켰던 것으로는 더 이상 통하지 않을 것이다. 이러한 철칙이 대중문화 전반에 걸쳐 더 많이 적용될수록, 우리는 더 둔감해진다. 이제는 공룡이 사람을 잡아먹는 것보다 더 소름끼치는 또다른 신흥 엔터테인먼트 장르에서는 사람이 사람을 잡아먹는다. 최근 뉴욕타임즈 기고문(https://www.nytimes.com/2022/07/23/style/cannibalism-tv-shows-movies-books.html )에서 알렉스 베그스는 식인 풍습이 점점 더 매력적이 되어 가고 있다고 기록했다. 그 기사에서 베그스는 등장 인물들이 서로를 먹는 것이 줄거리인 영화, TV 프로그램, 소설의 긴 목록을 제공했다. '어떤 배고픔(A Certain Hunger)'이라는 소설은 "(남성) 인육을 좋아하는 한 레스토랑 평론가에 관한 글"이다. 쇼타임 시리즈인 ‘옐로재킷(Yellowjackets)’은 "몇 달 동안 너무 많이 숲 속에서 발이 묶인 한 고등학교 여자 축구팀에 관한" 내용이다. 훌루(Hulu)의 새로운 프로그램인 프레시(Fresh)는 "인육의 밀매 거래"에 관한 것이다. ‘날 것(Raw)’은 '고기에 대한 취향이 늘어가는 채식주의 수의학 학생'을 그린 영화이고, ‘본즈앤올(Bones and All)’은 '인간을 소비하고픈 욕망이 되어버린 젊은 사랑'을 그린 영화다. 베그스는 "알고 보니 식인 풍습에는 때와 장소가 있는데, 그때가 바로 지금"이라고 했다. 도대체 왜 가장 오래되고 가장 불안하게 만드는 금기사항에 대한 이러한 집착을 갑작스레 부추기고 있는 것일까? 한 프로그램의 작가는 타임즈에 다음과 같이 썼다. "생각할 수도 없는 것이 생각할 수 있는 것이 된 것 같다. 식인 풍습은 생각할 수 없는 것의 범주에 매우 직접적으로 포함되는 것으로 보인다." 또 다른 사람은 "식인 풍습에 대한 혐오감 중 어떤 부분은 이것에 대한 황홀경에 대한 두려움인가?"라고 물었는데, 마치 이러한 개념에 탐스러운 면이 있는 것처럼 생각하는 것같다. 이 뉴욕타임즈 기사의 헤드라인이 뉴스피드에 뜨는 것을 처음 보았을 때 장난으로 생각했다. 하지만 분명히, 식인 풍습에 관한 이 모든 책, 영화, TV 프로그램은 매우 부분적으로 인기 있는 트렌드를 가리키고 있다. 도대체 왜일까? 아마도 모든 도덕적 경계를 허물고 모든 욕구를 찬양하는 것을 미덕으로 삼은 문화에서는 그 누구에게도 충격을 주는 것이 점점 더 어려워진다. 충격의 가치는 결국 무엇이 옳고 그른지, 그리고 더 나아가 무엇이 정상인지에 대한 감각에 달려 있다. 성 정체성과 성별 정체성이 매일 늘어만 가고, 점점 더 많은 사람들이 인간의 몸을 어떤 근본적인 설계나 목적이 없이 주물러 만들 수 있는 찰흙처럼 취급하는데, 일부 사람들이 그러한 몸을 이제는 음식처럼 상상하는 것이 놀라운가? 그리고 기독교 작가 글렌 스크리버의 표현(https://colsoncenter.christianbook.com/breathe-believe-freedom-kindness-progress-equality/glen-scrivener/9781784987497/pd/987497?event=ESRCG)대로, 인간이 단지 "말썽꾸러기 유인원"이라면, 왜 그런 일을 해서는 안 되는가? 침팬지들은 일상적으로 서로를 죽이고 먹는다. 만약 우리가 단지 진화된 동물이라면, 왜 우리 인간들이 서로를 먹는 것을 강하게 혐오해야 하는지 상상하기 어렵다. 만약 우리의 몸이 신성하거나 더 높은 목적을 위해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면, 모든 성욕뿐만 아니라 식욕도 허용되어야 한다. 분명히 말하지만, 나는 우리가 인육을 먹을 권리를 주장하는 운동의 첨단에 있다고 말하는 것이 아니다. 나는 확실히 우리가 그렇게 하지 않길 바란다. 이에 대한 사회적인 혐오감은 당연히 매우 강하며, 역사를 통틀어 여러 차례 여러 장소에서 깨졌을 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재 엔터테인먼트 분야에서 사람을 먹는 것에 재미 삼아 관심을 보이는 현상은 모든 건전한 혐오감을 잃어가고 있는 문화의 명백한 징후이다. 쥬라기 공원의 속편들이 점점 더 배고프고 더 큰 공룡들에게 의지하는 것처럼, 우리의 영화와 이야기들은, 끊임없이 선을 넘는 문화를 남긴 채 창의성을 잃어버렸다는 현실을 드러낸다. 특히 지금 같은 영지주의의 시대에는 등장인물들이 자신의 몸과 다른 사람들의 몸을 어떻게 생각하고 사용하는지에 대한 선을 넘으려는 경향이 있다. 성에 관한 한, "그레이의 50가지 그림자"와 "큐티스(Cuties)"와 같은 영화들은 이미 가학피학성 성애와 어린이에 대한 성착취를 메뉴에 올렸다. 그런 문화에서 식인 풍습이 사이드 메뉴로 나온 것은 놀랍지 않다. 몸에는 목적이 없다고 보거나 경계를 조금 메스껍게 여기는 세계관을 발견한 사람들은 그 이유에 대해 궁금해해야 한다. 기독교인들은 그들에게 다음과 같이 말할 수 있고 대안을 제시할 수 있기 때문이다. 몸은 신성하다. 몸이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창조된 것의 일부이기 때문만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몸소 육신을 입고 그 몸을 우리를 위해 내어 주셨기 때문이다. 재미있는 점은, 기독교의 초기 비평가들은 성찬식이 식인 풍습의 한 형태라고 주장했었다. 사실, 그것이야말로 인간의 몸이 침실, 영화, 심지어 식탁에서조차 존경과 명예를 받을 가치가 있는 궁극적인 이유였고, 지금도 마찬가지이다. #식인 #영화 #쥬라기공원 #뉴욕타임즈 #충격요법 #cannibalism #film #jurassicpark #movies #NewYorkTimes #shockvalu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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