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문 스크립트와 영어 음성 서비스
- 한국어 음성 서비스 https://youtu.be/d5bmL3dgBd0 - 한국어 스크립트 연구결과는 아버지를 대체할 수 없다고 한다. 2016년 심리학자인 피터 랭먼 박사는 56명의 미국 학교 총격범에 대한 인적 사항과 신상 명세에 관한 자료(https://nam02.safelinks.protection.outlook.com/...)를 수집했다. 그는 총격범의 82%가 대개 집에 양친이 없는, 역기능 가정의 환경에서 자랐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그러한 경향은 슬프게도 계속되고 있다. 텍사스 우발데의 총기난사범은 수년간 아버지와 함께 살지 않았다. 샌디 훅 사건의 총기난사범은 그 대학살극을 벌이기 전 2년 동안 아버지를 보지 못했다. 지난 달 가족학연구소의 새로운 연구(https://nam02.safelinks.protection.outlook.com/...) 결과, 다시 한번, 아버지가 특히 남자아이들에게 얼마나 중요한지를 보여주었다. 예를 들어, 아버지가 없이 자란 남자아이들은 집에서 아버지와 함께 사는 또래 집단 대비 대학을 졸업할 확률이 절반밖에 되지 않는다. 놀랍게도 그 수치는 인종, 소득, 일반적인 지능지수와 같은 다른 요인들을 통제한 후에도 꾸준하게 유지된다. 집에 아버지가 없는 남자아이들은 20대 후반에 일을 하지 않거나 학교에 다니지도 않고 "놀고 있을" 가능성이 거의 두 배로 높고, 35세가 되기까지 체포되거나 투옥될 가능성이 상당히 높다. 이러한 수치는 아버지의 부재가 우리 문화가 직면하고 있는 가장 절박한 위기 중 하나라는 것을 보여주는 기준점의 일부에 불과하다. 왜 우리 문화는 이 문제에 대해 더 많이 이야기하지 않는가? 한 가지 이유는 이 위기가 다른 "제3궤도(third rails)"와 교차하기 때문이다. 자유의 의미를 새로이 정의하고 책임감보다 자율성을 우선시함으로써 문란한 생활 방식을 부추긴 성혁명을 통해 우리 문화가 여기까지 왔다. 혼외 성관계가 정상적인 것으로 여겨지면, 그 결과로 생긴 아이들을 혼자 키우게 되는 쪽은 대부분 여성들이다. 입법으로 가능하게 된 다른 요인들도 기여했다. 이혼이 법적으로 더 쉬워지자, 이혼이 부정적이지 않은 것으로 인식되는데 크게 기여했다. 동성 결혼을 합법화하라는 요구는 동성 커플의 합법적 양육을 요구하도록 만들었는데, 이는 곧 자녀에게 어머니와 아버지가 모두 필요한 것이 아니라는 주장을 의미한다. 마찬가지로, 특정 형태의 보조 생식 방법은 아이들이 헌신적인 결혼의 결실이라기보다 상업적인 프로세스의 산물이라고 주장한다. 그리고 지금 미국 소년의 32%는 친아버지가 없는 집에서 자라고 있다. 우리가 이 사회적 실험의 끔찍한 결과로부터 배워야 할 것이 있다면, 그것은 아버지를 대체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이것은 창조 때부터 사실이었지만, 타락한 인간의 본성을 가지고 태어난 우리 각자가 살고 있는 타락한 세계에서는 더욱 그렇다. 우리는 건강한 방식으로 함께 살아가기 위해 건강한 행동의 모범을 보고 건강하지 못한 행동을 교정받아 가면서, 사회적, 정서적, 영적으로 미성숙한 아이에서 어른으로 성장하는 법을 배운다. 성경 구절은 의로움의 모범이 되는 삶은 단순히 설명하는 것 이상을 요구한다고 단언한다. 그리스도께서는 제자들에게 "그가 행하시는 대로 자기도 행할지니라"고 거듭 말씀하셨다. 예수께서 제자들의 발을 씻기신 것은 이것을 구체적인 실례로 보이신 것이다. "내가 너희에게 행한 것 같이 너희도 행하게 하려 하여 본을 보였노라." 바울은 고린도와 에베소의 신자들에게 "내가 그리스도를 본 받는 자가 된 것 같이 너희는 나를 본 받는 자가 되라"고 말했다. 성경의 다른 부분에서는 성별에 따른 모범과 이를 따라할 것을 지적하기도 한다. 바울은 디도서에서 남자들에게 "경건하고" "신중하도록" 가르쳤으며, "젊은 남자들을 신중하도록 권면하라"고 지시했다. 그는 또한 나이든 여자들에게 "선한 것을 가르치는 자들이 되고" "젊은 여자들"이 "신중하며", "순전하고" "선하게" 되도록 교훈하라고 했다. 물론, 그것은 또 다른 문화의 제3궤도이다. 우리는 성별 차이가 우리의 생물학적 현실에 내재되어 있지 않은 것처럼 너무나 절박하게 행동하기 때문에, 성별이 육아에 있서 결정적으로 중요하다는 주장은 도저히 받아들일 수가 없다. 하지만 통계 숫자는 거짓이 아니다. 윤리와 공공 정책 센터의 회장인 라이언 앤더슨 박사는, "'부모 양육(parenting)' 같은 것은 없다. 어머니의 양육(mothering)과 아버지의 양육(fathering)이 있을 뿐이며, 아이들에게는 이 둘 다 있을 때가 가장 좋다."라고 말한다(https://nam02.safelinks.protection.outlook.com/...). 기독교인들은 곧 아버지의 부재가 야기하는, 점점 증가하고 있는 공공 장소에서의 안전에 대한 위기 상황에 이의를 제기할 수 있으며, 이것을 교회에서부터 시작해야 한다. 우리는 말과 행동에 있어 모두, 남자와 여자는 둘 다 존재하며, 육아에 있어서 이 둘 다 중요하다고 확실히 말해야 한다. 우리는 아버지의 부재를 정상적인 것으로 만들어서는 안 되며, 남성들이 선택한 성적 행위와 그 결과인 자녀에 대해 책임을 지도록 해야 한다. 그리고 필요할 때마다 그리고 어떻게 해서든지 그 공백을 채워 주어야 한다. 우리의 기술과 문화적 교의가 아무리 이와는 다르게 행동하는 척 한다 해도, 모든 아이들에게는 한 명의 아버지가 있다. 이 새로운 통계는, 모든 아이들이 친아버지를 필요로 한다는 사실을 다시 한 번 보여준다. 우리는 이 아이들에게서 아버지를 빼앗을 권리가 없다. #Children #dads #DysfunctionalFamily #Parenting #아동 #아버지 #역기능가정 #부모양육
Commentaire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