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세상에 속한 것이 아니니라"가 의미하지 않는 것(기독교인들이 정치적인 문제에도 소명이 있는 이유) 1. 영어 원문 스크립트와 오디오 https://www.breakpoint.org/what-not-of-this-world-doesnt.../
2. 한국어 스크립트와 오디오 - 오디오: https://youtu.be/qVFFrGjULmk - 한국어 스크립트 "기독교인들은 정치적인 통제와 권력을 추구해서는 안 되며 잃어버린 영혼을 찾는 일에만 집중해야 한다."
"예수께서는 '내 나라는 이 세상에 속한 것이 아니니라'고 하셨으므로 기독교인들은 정부에 관여해서는 안 된다."
"예수님께서도 초기 기독교인들도 로마를 점령하려 하지 않았다. 예수님께서는 사람들의 마음과 생각 속에 그 분의 왕국을 세우셨다."
대법원이 로 대 웨이드 사건을 뒤집은 것에 대한 반응으로, 다양한 형태의 위와 같은 내용의 주장을 기독교인들의 SNS에서 찾을 수 있다. 이러한 생각에 따르면 진정한 기독교 영성은 정치적이거나 사법적인 승리를 추구하지도 않고 축하하지도 않는다는 것 같다. 기독교인들은 오직 하나님께 속한 일에만 관심을 가져야지, 이 세상에 속한 일에 관심을 가져서는 안 된다. 다시 말해서, 하나님께서는 정부와 관련이 없으시므로, 기독교인들도 그래서는 안 된다.
이러한 사고방식은 꽤 기독교적으로 들리지만, 그렇지 않다. 오히려 하나님의 정의와 이 세상의 정의의 관계를 부정확하게 묘사한 것이다. 또한 중요한 것은 이러한 생각은, 우리가 무엇을 위해 구원을 받았는지와 하나님께서 구원 받은 순간 우리를 바로 하늘나라로 데려가시는 대신 우리를 이 세상에 부르신 이유에 대해 오해하고 있다.
최근 동료인 쉐인 모리스는 트위터 상에서 이 잘못된 신학에 대해 솔직히 이야기했는데 그의 글이 바빌론 비 뉴스에서 새로 나온 낫더비(Not the Bee)에 실렸다(https://notthebee.com/.../christians-please-read-this...). 그의 글의 요점은 다음과 같다.
첫째, 대부분의 교회사에서 기독교인들은 민법이 어떤 식으로든 성경의 도덕성을 반영해야 한다는 데 동의했다. 가톨릭, 정교회, 대부분의 개신교 신자들은 정치에 무관심한 것을 선하거나 경건한 것으로 믿지 않았다. 수세기 동안 기독교인들이 다양한 이유로 정치적으로 개입하는 것을 기피하는 경우가 있었지만, 그 이유는 대개 어떠한 개입도 금지되었기 때문이었거나, 정치를 배척하는 것이 그리스도를 따르는 원칙으로서 설득력을 얻었던 급진적인 종교개혁과 재침례교도 같은 운동이 일어났던 1500년대에 이르러서였다. 그러나 그러한 때에도, 그것은 소수의견이었다. 반대로 대부분의 기독교인들에게는 민사 재판관이 되는 것은 항상 고매하고 고귀한 소명으로 여겨졌다.
물론 도덕성을 법제화하지 않는 것은 실제로 일어나지 않기 때문에 이것은 매우 타당하다. 누가 국가의 법을 만들든, 그 법은 항상 누군가의 도덕적 신념을 반영한다. 낙태와 다른 형태의 살인에서 발생하는 치명적인 폭력으로부터 무고한 생명을 보호하는 것은 좋은 정부가 하는 핵심 기능이다. 하나님께서는 바로 그 목적을 위해 정부를 만드셨다.
둘째, 쉐인은 지난 수년간 많은 신학자들이 주목했던 다음과 같은 내용을 지적했다. 예수님께서 요한복음 18장 36절에서 "내 나라는 이 세상에 속한 것이 아니니라"고 말씀하셨을 때 "내 나라는 이 세상과 무관하다"는 의미가 아니었다. 오히려 그의 왕국은 이 세상으로부터 나온 것이 아니며, (폭력적인 혁명과 같은) 이 세상의 방법을 사용하지 않으며, 이 세상의 종말을 목표로 삼지 않는다는 뜻이었다.
그러나 아브라함 카이퍼가 지적한 바(https://ccel.org/.../ascentofc.../ascentofchrist.vi.xii.html)와 같이, 예수님의 나라는 완전히 주권을 가지고 계시다고 선언하신 이 세상에 영향을 미치고 있으며, 이 세상 속에서 개인과 정부에게 정의를 집행하고 무고한 사람들에 대한 폭력을 처벌할 책임을 묻고 계신다(창세기 9:6 (다른 사람의 피를 흘리면 그 사람의 피도 흘릴 것이니 이는 하나님이 자기 형상대로 사람을 지으셨음이니라)).
그리스도와 초대 기독교인 모두 로마를 점령하려고 하지 않았다고 하는 사람들은 역사책을 더 읽어 보아야 한다. 서기 325년, 콘스탄티누스 황제는 로마 제국에서 기독교인에 대한 공식적인 박해를 끝냈다. 그로부터 불과 수십 년 뒤인 380년 테오도시우스 황제는 기독교를 로마 제국의 공식 종교로 선포했다. 단순한 역사적 사실은, 기독교인들이 실제로 로마를 점령했다는 것이다.
국교화의 정당성이나 그러한 방식이 과연 교회에 좋은 영향을 미쳤느냐의 문제는 일단 제쳐두고, 초기 기독교가 이 세상의 정부에 영향을 미치려고 하지 않았다는 것은 사실이 아니다. 초기 기독교인들은 만연한 영아 유기 살해를 금지하는 것으로부터 박해를 끝내고, 검투사 경기를 폐지시키는 것에 이르기까지 이 모든 일에 있어 정부에 영향을 주는 데 강한 관심을 보였다.
교회가 지옥의 문을 공격하는 것은, 물론 복음을 전하고 영혼들을 개종하는 일을 통해 진행되며, 사도 바울은 이를 "영적 무기"라고 불렀다. 그러나 특히 무고한 생명을 보호하는 일에 있어서 선하고 정의로운 정부를 옹호함으로써, 기독교인들은 이웃을 사랑하고,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시고 하나님의 뜻이 "하늘에서와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기를" 기도하고 순종하며 일하라는, 이 세상에서의 우리의 소명의 나머지 반을 이뤄가는 것이다.
우리는 특정한 목적을 성취하기 위해 구원받았다. 전도하고 예배하면서 동시에 우리는 선한 시민이 되어야 하고 이웃을 사랑해야 한다. 여기에는 정의로운 법을 지지하고 악법을 반대하는 것이 포함된다. 미국 역사상 로 대 웨이드 사건만큼 악한 법은 없었다. 따라서, 기독교인들이 이 법의 몰락을 축하하고 그 피비린내 나는 유산을 되돌리기 위해 일하는 것은 옳다. 그리고 기독교인들이 오해의 소지가 있도록 잘못 명명된 "결혼 존중법(Respect for Marraige Act)"과 같은 또 다른 악법을 제정하려는 노력에 반대하는 것은 옳은 일이다.
기독교인들이 너무나 고매한 소명을 가지고 있어서 정치와 거리를 두어야 한다는 생각은 영적으로 들릴지는 모르지만, 그것은 역사상 거의 어떤 기독교인도 인정하지 않았을 말이다. 예수님도 마찬가지셨을 것이다. 빌라도에게 "내 나라는 이 세상에 속한 것이 아니니라"라고 말씀하시면서 이 정부 관리에게 그 분의 권력이 어디로부터 온 것인지를 상기시켜 주셨던 것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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